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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묻는질문

월정사성보박물관에 자주하는 질문을 한곳에 모았습니다.

사리는 범어(梵語:Sanskrit)의 Sarira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원래는 신체라는 뜻이나 불교에서는 석존의 신골을 뜻하며 불교도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예배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사리는 불사리(佛舍利)와 법사리(法舍利)로 나누어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승려의 화장골까지도 합하여 넓은 의미에서 사리라고 통칭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법사리란 석존의 정신적 유산인 불경(佛經)을 비롯하여 치아(佛齒), 손톱(佛爪), 머리카락(佛髮), 석존 재세시에 사용하신 옷, 바리때(鉢), 지팡이들도 포함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사리는 그 수가 극히 한정되어 있으므로 사리를 대신하여 벼(稻), 우황(牛黃) (소 뼈 속의 결석(結石)으로 이를 여의주(如意珠)처럼 생각하였다고 한다)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석가의 가르침으로 널리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마치 벼가 성숙하고 결실하여서 볍씨가 되어, 그 한 알이 곧 싹이 나고 잎이 나며 이삭이 나와, 수없이 많은 수의 벼를 생산하듯이, 크게 인류를 구한다는 의미에서 사리를 대신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탑에서 간혹 종자가 발견되는 일 ?의성 관덕동 석탑- 이 있는데, 이런데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석존의 입멸 후 5∼6세기까지 부처님을 형상화하지 못한 이른바 무불상(無佛像)시대에도 불교신앙은 불탑을 중심으로 하는 사리신앙이 주가 되었습니다. 사리는 종자(種子:bija)로 부르고, 사리를 봉장하는 반원형의 스투파는 사리를 봉안하는 알(卵:anda) 또는 태(胎:garbha)로 불러왔는데, 적어도 인도에서는 이러한 형태로 석존은 오래오래 삶을 이어나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관람객께서는 개관시간에 맞춰서 오시면 됩니다.
단체관람객이 몰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전 예약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예약은 전화(033-339-7000)로 하시면 친절하게 답변해 드립니다.

박물관 내에서 기념사진 촬영, 과제물 제출을 위한 비상업적인 목적의 사진 촬영은 가능합니다.
그 외에 상업적인 용도의 촬영은 하실 수 없으며, 방송 촬영이나 기타 홍보물 등의 제작을 위한 촬영은 박물관으로 문의전화 주시기 바랍니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은 무료관람을 실시합니다. 
※ 월정사 주차료는 별도 부담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는 동대 만월산을 뒤로 하고, 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그 앞으로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이 또한 빼어난 경관을 그리며 흐르고 있습니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산聖山으로, 산 전체가 불교성지가 되는 곳은 남한에서는 오대산이 유일합니다. 월정사는 자장율사에 의해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됩니다. 자장은 중국으로 유학하여 산서성 오대산의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합니다. 이때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전해준 뒤, 신라에서도 오대산을 찾으라는 가르침을 주게 됩니다. 이후 귀국하여 찾게 된 곳이 강원도 오대산이며, 이때 월정사를 창건하고 오대 중 중대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조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통일신라에 이르면, 보천태자와 성덕왕에 의해서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하는 5만 보살신앙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정립되는 것이, 중앙의 1만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동쪽의 1만 관세음·남쪽의 1만 지장·서쪽의 1만 대세지·북쪽의 1만 미륵보살의 5만 보살입니다. 이때부터 월정사는 오대산의 다양한 신앙과 사찰들을 총괄하는 중심사찰의 위상을 확보하게 됩니다.

월정사는 이후 통일신라 말과 고려 초에는, 9산 선문 중 하나인 강릉 사굴산문의 영향권에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고려 말에는 나옹스님이 주석하게 되고, 조선 초에는 나옹문도들에 의한 불사와 정비가 이루어집니다.

이후 조선 중기에 이르면 사명당이 주석하고, 또 조선왕실의 외사고外史庫가 오대산에 들어오게 되면서 숭유억불기에도 사세가 번성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이번에는 역으로 사굴 산문의 본찰인 굴산사가 오대산의 영향권으로 편입되기에 이릅니다.

월정사는 해방을 전후해서 종정(교정)을 4번이나 역임하신 한암스님께서 주석하시며, 승가오칙僧伽五則 통한 청정한 기상을 진작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월정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의 위상을 확립하고, 동국대학교 건립을 주도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1.4후퇴 과정 중에, 아군에 의해 월정사를 비롯한 오대산의 암자들이 전소되면서, 오대산은 개산開山 이래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럼에도 화엄학의 대가이며, 불교경전은 물론 동양사상 전반을 아우른 탄허스님께서 주석하시며 월정사는 점차 추슬러집니다. 이때 탄허스님의 제자 만화스님이 현 적광전을 중건하고, 이후 현해스님이 대법륜전을 건립합니다. 그리고 현 주지인 정념스님에 의한 각고의 노력으로, 가람이 일신되면서 오대산의 성세가 재현되기에 이릅니다.

현재 월정사는 명상마을과 성보박물관 등을 전통사찰의 영역 밖에 새롭게 조성하면서, 2018평창 동계올림픽을 문화올림픽 으로 전개하는 메카로 작용하고 있습니다.